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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TV프로그램

꼬꼬무 우장춘 박사 씨없는 수박 이야기

by GooDsource 2023.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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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꼬꼬무에서는 우장춘 박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보통 씨 없는 수박 하면 떠올리는 사람이 바로 우장춘 박사입니다. 하지만 씨 없는 수박은 우장춘 박사가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 씨 없는 수박은 교토대학의 키하라 히토시 박사가 만들었고, 우장춘 박사는 한국에 씨없는 수박을 최초로 들고 와 알린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합니다. 

 

우장춘 박사가 정면을 바라보는 흑백사진

 

꼬꼬무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는 매국노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는 우범선으로 조선인이고, 어머니는 일본인인 사카이 나카입니다. 아버지 우범선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난 을미사변에 가담했다가 일본 도쿄로 망명했습니다. 망명한 곳에서 사카이 나카를 만나게 되었고, 이후 아들 우장춘을 낳게 됩니다. 그러나 을미사변을 일으킨 을미 망명객들에게 현상금이 걸려있었습니다. 이후 전 만민공동회 회장 고영근에게 목과 어꺠를 단도로 찔려 국모시해에 대한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우장춘의 집안이 어려워지자 6살 때까지는 고아원에 살았습니다. 후에 가정형편이 좀 나아져 어머니와 함께 히로시마로 이사하여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받으며 도쿄제국대학 농과대학에 입학합니다. 이후 도쿄제국대학에서 조선인으로는 두 번째로 농학박사를 취득합니다. 

 

일본인 여성과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자신을 데릴사위로서 스나가 나가하루라는 일본식 이름을 받았습니다. 자녀들 또한 일본인으로 키우기 위해 처가의 성을 사용했으나 우장춘은 한국 성인 '우'를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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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춘 박사 한국에 돌아오다

 

1947년 경남도 농림국장의 주도로 우장춘 박사 환국운동이 벌어졌고, 일본에서는 우장춘 박사를 보내기 아쉬워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결국 감옥에 가두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우장춘 박사는 스스로 조선인 강제수용소에 들어가 한국 정부에서 보내준 신분증을 보여주며 한국인임을 주장합니다. 

 

이때 한국에서 우장춘 박사를 데려오기 위해 지불한 돈은 약 100만엔으로 현재의 화폐로는 10억 정도의 가치가 있습니다. 우장춘은 이 돈 모두를 한국에서 사용할 우량종자를 구매하는 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한국 정부에서도 우장춘 박사를 이렇게 원했던 이유는 우리나라의 농업 생산량이 저조하여 종자개발이 시급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사실을 듣고 일본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여권이 발급되지 않아 어머니의 임종을 놓치고 맙니다. 많은 국민들이 그 슬픔에 동감하며 조의금을 모았고, 우장춘 박사는 이 돈으로 연구소 마당에 우물을 만들어 어머니의 자애로운 젖이라는 이름의 '자유천'을 만듭니다. 

 

십이지장과 위의 궤양으로 병원 입퇴원이 늘어났고, 1959년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에 이어 두번째로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수여받았습니다. 드디어 조국이 자신을 인정했음에 기뻐했으나 이틀 후 사망하고 맙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첫 번째로 사회장이 이루어졌습니다. 

 

현재 수원시 농촌진흥청에 속한 여가산에 우장춘 박사의 묘소가 있으며,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에는 우장춘 박사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의 도로명은 '우장춘로'입니다. 

 

우장춘 박사의 업적

 

우장춘 박사의 첫번쨰 업적은 겹꽃 페튜니아를 개발한 것입니다. 페튜니아는 미국과 유럽에서 관상용으로 인기가 높았는데, 아무리 실험을 해도 홑꽃만 나왔습니다. 이것에 성공한 것이 우장춘 박사로 이것에 성공한 후 엄청난 돈을 회사에 안겨줍니다. 하지만 일본회사에 취직 중이던 우장춘 박사가 실질적으로 얻은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두 번째로 '종의 합성' 이론입니다. 이전에는 찰스다윈의 진화론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내용이 자연도태로 자연환경에 살기 좋은 개체만 살아남고, 자손을 남기면서 새로운 종이 탄생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장춘은 다른 종이 교잡해서 새로운 종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는 배추와 양배추가 교잡한 유채였습니다. (유채꽃의 유채가 맞습니다) 이후 한 가지 더 발견했는데, 이것은 배추와 흑겨자가 교잡한 갓(갓김치 할 때)이었습니다. 

 

이후 6.25 전쟁 중에도 속이 꽉차고 잎이 두꺼운 지금의 배추인 '결구배추'를 개발합니다. 그 밖에 귤을 개량하여 제주도에서 대량 생산할 수 있도록 했으며 무와 감자도 개량하여 병충해를 이기고, 일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밖에도 애호박, 당도가 높은 금싸라기 참외를 개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농민들은 개량된 종자에 관심이 없었고, 그래서 들고 온 것이 씨 없는 수박입니다. 사람들에게 종자개량의 필요성을 알려주기 위해 씨 없는 수박을 이용했고, 사람들은 그 맛에 감탄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잘못 알려진 사실이 우장춘 박사가 씨없는 수박을 개발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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